일은 하되 출근은 하지 않는다
한때 워크웨어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땅을 고르고, 철을 깎고, 기계를 돌리는 노동자의 몸을 지키기 위한 옷이었죠. 두꺼운 캔버스 재킷과 견고한 데님 팬츠는 땀과 먼지, 날선 도구들 사이에서 버텨야만 했습니다. ‘일한다’는 것은 곧 물리적 노동과 동의어였고, 워크웨어는 그 노동의 흔적이자 증거였죠.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매일 현장에 나서는 대신,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로 향하거나, 심지어는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키기도 하죠.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엄연한 ‘워크’가 되었습니다. 몸 대신 머리를 쓰게 되었을 뿐. 과거의 노동이 근육을 필요로 했다면, 현대의 일은 아이디어와 속도를 요구하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워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상사는 여전히 기대하고, 우리는 여전히 '끝내야 할 것들'과 싸웁니다. 다만 도구가 삽과 망치에서 마우스와 키보드로 바뀌었을 뿐이죠. 노동의 형태는 진화했지만, 노동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그렇다면 워크웨어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칼하트나 엔지니어드 가먼츠는 과거의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여전히 워크웨어의 DNA를 잇고 있습니다. 아더에러나 아워레가시는 아예 '현대의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유니폼을 상상하기도 하죠. 포스트워크웨어란 이런 것입니다. 더 이상 특정한 노동에 국한되지 않고, 일과 삶이 혼합된 시대에 맞춘 옷.
우리는 이제 회의가 끝나자마자 친구를 만나고, 클라이언트 미팅을 화상으로 마친 후 바로 헬스장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옷은 이 모든 '상황'을 유연하게 따라잡아야 하죠. 딱딱한 슈트는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대신 편안하지만 세련된 셋업, 기능성 소재를 활용한 블레이저, 그리고 운동화가 새로운 워크웨어를 정의하고 있지요.
이제 출근복과 퇴근복의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위해 일하는 옷'이 필요한 시대. 유연하고, 실용적이며, 동시에 자기표현이 가능한. 덕분에 포스트워크웨어는 점점 더 많은 장르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애슬레저, 밀리터리, 스트리트웨어, 테크웨어까지. 일의 형태가 자유로워진 만큼, 옷도 자유로워진 것이죠.
‘일은 하되 출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넘어,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는데요. 더 이상 우리는 옷으로 직업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옷은 우리의 삶을 설명하죠. 워크웨어 트렌드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아주 다른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은
일에 더 가까운가요? 삶에 더 가까운가요?
워크웨어